이상한 한국인 만나는 것

이상한 한국인 만나는 것

한국에 영어열풍이 있어서 이상한 한국인을 만날수있다. 그런 사람은 외국인을 보면 가서 어떤 이상한 것을 하고싶다. 그런 사람 3명에대하여 여기에 쓰겠다.

성균관 대학교에서 공부했을때 혜화역에서 거리에 갔다. 거리에서 나에게 20살의 여자가 왔다. 영어로 “friend“,“friend“,“friend“라고 했다. 나는 한국어로 무엇이 필요하느냐고 물었다. 대학로에 남자친구를 구하도록 와서 나를 남자친구로 사귀고싶어했다. 내가 그여자의 남자친구가 되고싶지않다고 대답해서 여자는 같이 커피샵에 가자고했다. 내가 커피샵에 가고싶지않다고해서 기숙사에 걸어서 갔다. 기숙사에 가는것 8분이 필요했지만 그여자는 나를 개처럼 기숙사로 따라와서 내내 커피샵에 가자고했다. 마지막에 내가 많이 공부해야되어서 여자친구만날 시간이 없다고해서 그여자가 밖 나갔다.

다른 이상한 사람을 인천 공항에서 만났다. 내가 공항에서 버스정류장에 가서 45살의 여자를 만났다. 가방이 있어서 도착했던 사람처럼 보였다. 나에게 남편은 영국사람이라서 아까에 영국에서 도착했다고 했다. 돈이 없어서 버스표를 살수없어서 만원을 줄수있느냐고 했다. 좋은 옷과 가방이 있어서 거지처럼 보이지않아서 그여자에게 만원을 줬다. 나중에 나에게 전화번호를 줘서 서울에서 만나고싶다고했다. 그렇게 좋은 옷이있으면서 영국에서 돌아오는 버스표를 살수없는사람이 이상해 보였다. 나에게 내내 영어로 말해서 아마 영어열풍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나에게 말하도록 구실이 필요해서 가서 만원을 달라고했다.

교보문고에서 외국책을 봤을때 남자가 왔다. 나에게 어느나라 사람이냐고 물었다. 나는 체코사람이라고 대답해서 그남자는 큰가방을 열었고 거기에 다양한 나라의 동전과 지폐가 많았다. 가방에서 체코 동전을 치웠다. 다른 체코 동전이나 지폐가 있는냐고 물었다. 내가 체코돈이 없어서 그사람이 가버렸다.

내가 산적이 있는 다른나라보다 한국에 그런 이상한 사람이 많다. 거지가 있지만 거지는 이상하지않다. 돈이 필요해서 오는 편이다. 그럼 한국에서 오는 사람 돈이 필요하지않다. 대만에서 3년동안 살았을때 그렇게 이상한 사람을 만난적이없다. 원인이 2개 있을것같다. 그사람은 보통 내내 영어로 말한다. 한국에서 영어열이 있어서 아마 돈대신에 영어때문에 오는편인것같다. 한국에서 사회는 사람에게 잔인하다. 쓸쓸한 사람이 많다. 아마 다른 사람과 이야기하고싶어해서 이상한구실을 궁리해야하는것겉다.

원숭이역할 직업

내가 중국에서 공부했을때 심천에서 무한으로 기차로 돌아왔다. 기차에서 커플을 만났다. 그사람은 다다음 주에 친구와 산으로여행가니까 같이 가자고했다. 그기업가는 부자라서 여해경비도 지불한다고했다. 내가 동의해서 그날에 내기숙사앞에 기차에서 만난 남자가 왔다. 나는 산에 간다고 생각했지만 산대신에 자동차로 호텔에 갔다.

호텔에서 3시간 기다려서 공항에 기업가를 마중하도록 갔다. 기업가는 도착한후에 호텔에있는 회의실에 돌아왔다. 거기에서 다른 기업가가 기다렸다. 거기에 경찰의 사장과 가까운시내의 시장도 있다. 기업가들과 시장은 2시간에 파워포인트로 발표하다. 나는 한자를 많이 읽을줄몰라서 어떤의미가 있는지 몰라서 지루함을 느꼈다. 제출은 끝난후에 우리는 낡은 공장에 갔다. 모든 기업가는 여기에서 사는 기업가에게 돈을 빌려주는 계획이 있다. 같이 새로운 공장을 건축하고 싶어했다. 건축의 장소를 본후에 호텔에 돌아왔다.

호텔에서 파티를 했다. 맛있는 음식이 많아서 맥주도 많이 마셨다. 내가 교통 경찰 부장과 이야기했다. 거기에 대만사람도 있어서 대만에서 외국인과 중국어로 이야기하지않는 경향있어서 그사람은 나에게 영어로 말했다. 영어로 대만은 중국과 빨리 재통일하면 좋겠다고했다. 나에게 동의하냐고 물었다. 내가 중국어로 대답했다. 재통일하면 대만으로 사기꾼과 거지가 올거라서 대만생활은 나빠질거라서 빨리 재통일하는것이 나쁘다고 대답했다. 경찰사람들은 그 대만사람이 영어로 말했던 말을 몰라서 내가 먼저말을 시작하다고 생각했다. 나와 이야기를 끝났다.

취하게 된후에 노래방에 왔다. 노래방에서 경찰사장과 기업가와 노래했다. 30분후에 매춘부가 왔다. 매춘부는 남자보다 많았다. 내가 매춘부와 이야기한 적이 없어서 걱정하게 되었다. 매춘부는 나와 이야기를 시작하고 싶어하고 내가 모른 척했다. 기업가의 부인은

매춘부에게 나와 같이 마시라고했다. 아주 예쁜 매춘부 2명이 왔다. 매춘부는 오늘 친구 생일이라서 친구(다른 매춘부)와 같이 맥주를 마셔야된다고했다. 그 매춘부는 맥주를 조금 마신후에 나에게 자기가마신 그 컵으로 마시라고했다. 나는 같은 컵으로 마시면 병에 걸랄수있을것같아서 거절했다. 처음에 말한 매춘부는 내가 거절해서 친구를 타박한다고해서 2명이 밖으로 갔다. 매춘부들은 나와 이야기를 끝났다. 기업가의 부인은 와서 매춘부가 예쁘지않느냐다고 물었다. 아니라고 대답했다. 왜 매춘부를 싫어하느냐고 물은후에 내가 질문을 모른 척했다. 내가 이상한 남자 라고 말했다.

내일 마침내 산에 갔다. 산에 공중 케이블카로 가서 꼭대기에 1시간만 있었다. 내가 등산하기 대신에 내내 건물안에 있어서 만족하지않았다. 기숙사에 돌아온후에 친구에게 그 여행에대해서 말했다. 친구는 내가 여행하지않았다고 대답했다. 내가 여행하고있다고 생각했지만 여행대신에 실제로는 일했다. 백인은 중국에서 “백인 원숭이”로 일할수있다. 중국사람은 다른 중국사람을 믿지않아서 비즈니스 회의에 미국기업가가 있으면 성공확률더 크다. 그래서 백인은 미국명함을 만들어서 미국기업가의 캐릭터를 연기한다. 친구는 내가 그런 원숭이를 하면 2000중국원을 받을수있다고했다.

그래서 나는 처음에 기차에서 만난 사람이 나에게 여행경비를 지불해서 무료로 여행했다고 생각했다. 마지막에 내가 무료로 원숭이로 일했다. 그런대 그런 직업은 좋지않다. 많은 음식, , 매춘부 – 모두 건강에 나빠서 그런 직업을 내내 하는것이 힘들것같다.

대만 술고래 사건

해외에서 오래 사는 사람은 자주 불행하다. 동아시아에서 영어권나라에서 온 사람이 많다. 그사람들은 자주 영어를 가르칠수있으니까 어디에서나 취직하기가 쉬워서 생활이 그렇게 힘들지않다. 다른 나라사람은 자주 고향에 돌아가는 편이다. 그런데 러시아생활이 힘들어서 러시아사람은 러시아에 돌아가고싶지않아한다. 사는 나라에서 좋은 직업을 구할수없어서 생활이 힘들지만 러시아에 계속 돌아가고싶지않아한다. 여기에서 이런 사람을 만난것에대하여 쓰겠다.

대만에서 공부했을때 저녁에 공원에서 사람을 만났다. 그사람을 벌써 본적이 있지만 이야기한 적이 없었다. 그사람과 이야기를 시작했다. 러시아에서 와서 대만에서 벌써 10년이나 살아서 그동안에 러시아 돌아가본 적이없다고했다. 그사람은 가방에 맥주가 많으니까 같이 마시자고 했다. 벌써 이틀동안 마셨지만 나에게 이것에대해서 말하지않았다. 그래서 우리 2시간 같이 마셨다. 2시간후에 내가 대만학생이 주최하는 활동에 가야해서 우리 둘이 같이 갈수있다고했다.

우리가 그활동에 갔는데 거기에 대만사람 30명 있었다. 다른 외국인이 없었다. 우리가 첫째즘에서 앉아서 5분동안 말하고있는 학생의 말을 들었다. 5분후에 취한 친구가 일어서서 대만사람들에게 말을하기 시작했다:

당신들 감정이 없어.

웃지않고 울지않고 화도 내지 않아.

이나라사람은 벌레야!

벌레처럼 감정이 없어!

당신들은 감정이 없어!

벌레야!

지금 뭔가 느끼는게 있어?

내가 이렇게 말할때 너네는 느끼는게 없어!

벌레야!“

사람이 침묵해서 분위기가 나빠졌다. 내가 그사람과 처음 이야기했지만 싸움을 시작하면 외국인 이어서 나도 위험해질수있었다. 새로운 친구가 침묵했다. 하지만 그사람이 조금 침묵한 후에 다시 말했다. 근처에 앉은 예쁜 여자의 팔을 잡았다. 팔을 잡을때 그여자에게 말했다:

네가 느끼는게 있어?

개미처럼 느끼는게 없어!

내가 너를 개미를 죽이듯이 일거야!

알겠어?

너를 죽일거야!

느끼는게 없지?

너를 죽여도 너는 계속 감정이 없을거야!

개미를 죽이듯이 일거야!“

그 활동을 주최하는 학생은 나에게 빨리 밖에 가라고했다. 내가 친구를 잡아서 밖에갔다. 공원에서 오랫만에 러시아친구를 만났다. 취한 친구는 그사람을 몰라서 말하기 시작했다:

언 나라 사람 이야?“

러시아사람 이에요.“

취한 친구는 나를 잘 몰라서 내가 러시아말을 이해할수있는 것을 몰라서 러시아말로 말하기 시작했다:

누가 너를 여기 보냈어?“

몰라요.“

누가 너를 보냈어?“

아무도 나를 보내지않았어요. 제가 여기에서 학사과정 공부하고있어요.”

여기에 혼자 온 사람은 없어. 누구든지 누군가가 보낸사람이야! 누가 너를 보냈어?“

제 마음대로 대만에 왔어요.“

허튼 소리! 누구야?“

나중에 나에게 그이야기를 그렇게 번역했다:

우리 조금 의견이 맞지않아.“

새로운 친구가 다른 러시아사람이 모두 첩보원이라는 것을 믿어서 웃겼다. 친구를 잡고 빨리 버스저류장에 가서 버스에 앉게 시켰다.

우리 다시 만날때 그사람이 이틀이나 마셔서 그밤동안에 했던것을 모두 까먹었다고 다시 같이 술을 마시자고 했다. 나는 그사람과 다시 같이 마시지않았다….

에스토니아에서 공부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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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에 3월부터 6월 까지 에스토니아에서 공부했다.

그동안에 박사과정에 필요한 학점이 충분해서 수업을 마음대로 고를수있어서 일본말, 러시아말과 아랍어말의 수업을 다녔다. 공부하기외에도 조금 사회적인식에대해서 가르치고 박사논문 연구에대한 기사를 준비했다.

타르투에 도착한후에 2일후에 생일이 있는데 아는친구가 없어서 기숙사근처에 있는 클럽에 갔다. 거기에있는 사람들이 이상해보였다. 사람은 다른 사람과 이야기하지않고 혼자서 춤추고 여자가 별로 없었다. 인터넷에서 에스토니아사람이 서로 친하지않다고 읽어서 아마 에스토니아에서 사람과 다른 사람 그렇게 이야기하고싶어하지않는다고 생각했다. 맥주를 사서마시고 조금 춤을 추기 시작했다. 20분후에 디제이의 머리 근처에 있는 상표를 깨닫았다. 거기에 영어로 쓴 “에스토니아 청년 게이”라는 문장이 있었다. 그렇게 클럽에 있는 이상하는것을 이해할수있었다. 어떤 남자가 와서 같이 춤울 추고싶느냐고 물었다. 나는 게이아니라고 대답해서 그남자가 화가 나서 왜 거기에 왔느냐고 물었다. 대답하기가 힘들었다.

에스토니아에오기전에 숲에서 도보여행하는것을 계획했다. 도보여행 그렇게 쉽지않다. 에스토니아에서 도보여행을할 길이 별로 없다. 사람이 적어서 마을에서 다른 마을에 길이 아마 6-8킬로미터 이다. 마을에 사람이 적어서 사람이 다니는 길을 만들 이유가 없어서 자동차길만 있다. 그래서 자동차길로 걸어서 가야됐다. 에스토니아에 산이 별로 없고 숲에 늪이 많다. 숲이 밀집해서 거기에서 산책하기가 힘들다. 내 옛날 생각보다 지방에서 도보여행이 힘들다. 모기가 많기때문이다. 한국은 에스토니아와 비교하면 모기가 별로 없다.

그래서 내가 시내안에 있었다. 시내밖에 4번 갔다. 타르투대학교 연구하기를 계획했지만 마침내 에스토니아 연구자에게서 도움을 받지못해서 연구할수없었다. 언어에대하여 연구해서 그언어로 말할줄모르면 연구가 힘들다. 연구대신에 언어를 공부했다. 초급러시아어, 초급아랍어과 중급일본어수업을 다녔다. 러시아어와 아랍어수업은 영어로 가르쳤지만 일본어수업은 에스토니아말로 가르쳤다. 그래서 영어로 쓴 문법 설명을 차자야됐다. 일본한자는 중국한자와 비슷한데다가 일본어문법이 한국어문법과 비슷해서 일본어시험이 쉬웠다. 한자의 의미는 중국어로 알고 일본어문법을 한국어문법으로 이해해서 일본말의 능력 진짜 그렇게 좋지않았지만 A 받았다.

에스토니아 음식이 아주 단순하다. 에스토니아에서는 보통 돼지고기와 감자를 먹는다. 타르투에 외국식당이 많지않아서 다른 음식 자주 먹지못했다. 맥주는 알코홀이 많이 함유돼서 맛이 달다. 음식에 관련된 재미있는 경험을 했다. 초콜릿처럼 보이는 것을 사서 먹을때 맛이 이상했다. 친구에게 뭐냐고 물었더니 말린 암소의 피 라고 대답했다.

 

내 생활

 

나는 체코슬로바키아의 브르노에서 태어났다.

브르노에서 계속 살고있다.

7살이었을때 4개월동안 알제리에서 살았다.

그동안에 체코슬로바키아가 공산주의였어서 사회주의 알제리를 도왔기때문에 아버지께서 알제리에서 2년동안 일하셨다.

초등학교졸업후에 수학고등학교를 다녔다. 그래서 대학교에서 수학을 공부했다.

수학을 공부하면서 사회과학도 배우고싶어서 4학년때 다른 대학에도 입학했다. 그렇게 해서 2년동안 수학석사과정을 공부하면서 심리학과 정치학학사과정을 공부했다. 수학석사학위를 받은후에 다른2년동안 대학원에서 수학을 가르치면서 심리학과 정치학학사를 공부했다. 심리학과 정치학학사학위를 받은후에 심리학석사과정을 시작했다. 심리학대학원을 졸업 한후에 회사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회사에서 정보 시스템의 프로그래머로 일하기 시작해서 3년동안 프로그래머로 일하면서 사회 심리학박사과정을 시작했다. 심리학박사를 공부하면 영어외에 다른외국어 시험이 필요했다. 대학교에서 무료 일본말수업을 다닐수있어서 그 수업을 다녀서 일본어시험을 봤다.

프로그래머로 일했을때 연구할 시간이 적어서 달은 외국에서 공부할수있도록장학금 프로그램을 찾아봤다. 내가 마사릭대학교의 파트너 대학교에서 공부할수있도럭 장학금을 신정했다. 박사학생 브라질이나 캐나다나 한국을 고를수있다. 한국말과 일본말 비슷해서 한국을 고라서 성균관대학교에서 1년동안공부할수있도럭장학금을 받았다.

성균관에 들어간후에 심리학대학원에 영어로가르치는 수업이 별로 없어서 마지막에 매일 한국어 수업을 다니기로했다. 성균어학원에서 1년동안 한국어수업을 다녔을때 친구가 90% 중국이나 대만사람이였다. 한자를 공부해내면 한국단어를 기억하는것이 쉬워질수있다고 들어서 중국어를 공부하기로 했다. 그래서 대만에 6개월동안 중국어를 배우려고갔다. 정치대학교에서 중국어를 공부한후에 에스토니아의 타르투대학교에 3개월동안에 교환학생으로 갔다.

그동안에 중국에서 1년동안연구할수있도록 장학금을 받아서 중국우한에 있는 중앙중국사범대학에 갔다. 거기에서 반년동안 중국수업을 다닌후에 박사논문 연구를 했다.

중국에서 브르노에 돌아오자마자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렇게 2년반동안 동아시아에서 공부해서 정치대학교에서 아태지역연구박사를 공부하기로했다. 그런데 마지막에 두번쩨박사과정을 공부하는것이 의미가 없다는 느낌이 들어서 2년후에 아태지역연구박사과정을 그만두고 체코에 돌아왔다.

브르노에서 3년동안 프로그래머로 일했다. 2주일전에 직업을 바꿨였다. 요즘 체코 교통연구 센터 연구자로 일한. 내계획은 거기에서 교통심리학연구를 하면서 연궁에 필요한 프로그램을하는것 이다.